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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바다 속에서만 펼쳐졌던 시대

by *1*s 2020. 8. 20.

오로지 바다 속에서만 펼쳐졌던 시대


보통 압쇄기 같은 아가리 안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이빨로 무장한 존재는 캄브리아기에 바다를 뒤숭숭하고 위험스런 곳으로 만든 가장 나쁜 잔인한 놈이었던 데다가 또 삼엽충한테도 무슨 계획이 있을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차선책 의 계획이 있었을 리도 만무했다. 우리의 삼엽충 몸집이 더 크고 그 갑옷 등 딱지가 더 딱딱했더라면, 아마 그 무시무시한 놈도 아예 그런 걸 애써 물어 뜯으려다 이빨을 부러뜨릴 것까지는 없으리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어찌됐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곧, 찰스 두리틀 월코트(Charles Doolkde Walcott) 가 타고 있던 말이 1909년 8월에 갑자기 멈춰서는 일만 없었더라도 우리는 그와 같은 드라마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었으리라는 점이다.


월코트는 1850년 뉴욕 주에서 태어났는데, 이미 어린 시절부터 화석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내로라할 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생동안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과학연구소를 세군데나 이끌어나갔다. ‘스미소니언 연구소’, ‘미국 지질조사국’, ‘국립과학원’이 그것이며 몇몇 미국 대통령들이 그와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말은 그렇게 인 기가 높다는 점에도 별 감명을 보이지 않았다. 놈이 계속해서 걸어가려 하지 않았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놈을 타고 있던 월코트의 앞쪽에 산사 태의 결과로 생긴 바위 부스러기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월코트는 가족들을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캐나다 지역의 로키 산군으로 화석을 수집 하기 위한 탐사를 나왔던 차였다. 날씨는 주웠고 비까지 내 렸으며, 높은 지대 의 공기 속에서 일을 하느라 탐사단이 지쳐버 린 데다가 월코트도 거의 60세 가 다 된 나이로 더 이상 팔팔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 한 지질학자는 말에서 내려 버제스 산길(Burgess-Pass)을 손수 치워대기 시작 했다. 이때 혈암(Schiefer, 貞岩. 셰일, 이관암) 파편 하나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월코트는 멈칫했다. 


돌판이 두 쪽으로 쫙 갈라져 있는 곳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갑각류 같은 것 이 웅크리고 있었다. 아냐, 저렇게 웅크리고 있을 리가 없지. 돌로 화한 것인 데 저처럼 꼭 갑각류와 같은 모습으로 보일 리도 없었고, 적어도 우리가 마 요네즈와 레몬즙 몇 방울을 곁들여서 먹곤 하는 그런 녀석의 모습을 영락없 이 닮아 보일 리는 없었다. 이 표본은 뿔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몸집에 비해 거대하면서도 가지가 난 뿔로 뒤쪽으로 굽어져 있고 끝은 네 가닥이나 있었다. 또 여러 개의 몸마디로 나뉜 몸 측면으로는 금박을 입힌 듯한, 부분적으 로는 아가미를 장착하기도 한 작은 다리들이 달려 있었다. 



월코트는 이 작은 동물을 ‘마렐라 스플렌덴스(Marella splendens)’라고 명명했지만, 흔히는 화려한 놈 마렐라라고 불렸다. 그는 고무되어 계속해서 암석들을 샅샅이 뒤져나 갔다. 부인, 아들, 친구들 모두가 달려들어야 했다. 그들은 수천에 이르는 생 명체들의 잔해를 발견했는데, 일부는 마렐라처 럼 완벽하게 보존된 것들이었 고 일부는 그저 조각난 파편들이었다. 기괴한 모습을 지닌 것들도 출현했다. 응시하는 듯한 겹눈, 갑옷 등딱지 조각들, 촉수, 가시나 집게발, 다리관절 등 등, 얼핏 봐서는 어 떤 동물 종에도 속할 것 같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었다.


1909년 8월 31일에 월코트는 일지에다, ‘우리는 일군의 주목해볼 만한 엽 각목의 갑각류들을 발굴했다’라고 적었다. 그가 무엇보다 도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건 그 산길에서 아예 안 떠나가는 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점점 더 나빠져 가는 날씨를 어쩔 수 없이 피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1910년 여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버제스 혈 암’(Burgess Shale)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산사태가 쏟아져 내린 장소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연구를 통해 월코트는 혈암층의 연대가 4억 8,800만 년에서 5억 4,200만 년 사이임을, 따라서 캄브리아기에서 유래한 것임을 증명했다. 바로 지구 전체가 범람했던 시대로 생명은 오로지 바다 속에서만 펼쳐졌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이미 1876년에 월코트가 마침 삼엽충이 절지동물에 소 속됨을 입증하게 되자, 이 캄브리아기는 그로 하여금 급상승의 출세가도를 달리도록 도와주었었다. 그 뒤의 여러 해들에 그의 명성은 현저하게 증대되 었고, 1924년에 이르기까지 그와 그를 도왔던 사람들은 65,000점이 넘는 화 석들을 수집했고 100종 이상에 대해 서술하기도 했다.


버제스 혈암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캄브리아기 화석의 가장 중요한 발굴지 들 가운데 한 곳으로,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요호(Yoh) 국립공원 내에 한적하게 위치하고 있으며 좌우로는 인상적인 산봉우리들이 호위하듯 둘러 싸고 있다. 그동안에 유네스코가 그 지역을 감시하게 되어서, 오직 연구자만 입장이 가능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을까지의 거리도 무려 12킬로미터 나 된다. 여기에는 유기체들의 단단한 껍질만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 약한 부분들도 보존되어 있다. 



그러한 것들은 분명 에디아카라기의 공기매 트리스와 마찬가지로 산사태의 진흙 아래 파묻혀진 것들이었다. 월코트의 사람들은 연충류나 해파리를 상기시켜주는 존재들과 마주치게 되었고, 촉수 나 또 내장 조직들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이 내장 조직은 그것을 지녔던 놈이 갑작스러운 죽음 이전에 무엇을 즐겨 먹었는지를 드러내주었다. 그들은 또 모피와 같은 외피라든가 온갖 끈적끈적하고 흐늘흐늘한 덩어리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런 동물들은 적도 부근의 온도7 적당한 얕은 바다로, 근처에 거대한 암초가 있던 곳에서 살고 있었다. 바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것들 이 그들을 가장자리 너머로 밀어가 암초 변두리 밑에다 매장했음에 틀림이 없었다. 몇몇 화석들의 경우에는 높은 압력을 받고 체액이 흘러나왔을 때 주 변에 거무스름한 얼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생명은 35억 년간의 단세포생물과 원시적인 다세포생물 기간 이 지나자 곧바로 폭발적일 정도로 복잡성과 종의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一그러니까 지구의 역사로는 불과 몇 백만 년 내에一완 전히 새로우면서도 고도로 발전된 동물군이 지휘권을 넘겨받았던 것이다. 월코트는 에디아카라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공기매트리스와 동물 중에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앞 장에서 이미 살 펴본 바와 같이 지겨울 정도로 잘 알려진 논쟁에 휘말려들지 않아도 되었다. 그도 물론 무엇이 그 세상을 급속하게 변화시켜서 가시와 갑옷과 이빨을 갖 춘 수많은 온갖 전사의 무리들이 갑작스럽게 대양에 퍼져 살게 되었던가 하 는 점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우선 혈암의 판돌에서 나온 존재들 을 잘 알고 있던 동물들의 영역에 귀속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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